2편 "몸이 있어야 지능이 시작된다" 로드니 브룩스와 임바디드 AI

 피지컬 AI를 공부하다 보면 기존의 AI 연구자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질문을 던진 학자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MIT의 로드니 브룩스(Rodney Brooks) 교수입니다. 1980년대 후반, 당시 AI 연구는 기호와 공식, 복잡한 계산을 통해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려는 '기호주의 AI'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체스를 두고 논리적 문제를 푸는 컴퓨터가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으로 대접받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브룩스 교수는 매우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체스를 잘 두는 인공지능이 과면 물리적인 세상에서 컵 하나 제대로 집어 올릴 수 있는가?" 그가 1990년에 발표한 유명한 논문 제목처럼, '코끼리는 체스를 두지 않는다(Elephants Don't Play Chess)'라는 일침은 피지컬 AI의 흐름을 바꾼 거대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완벽한 세계 지도보다 빠른 감각과 반응

기존의 전통적인 로봇 공학은 '인지 -> 정밀 모델링 -> 계획 -> 행동'의 고전적인 단계를 거쳤습니다. 카메라로 주변을 촬영하면, 컴퓨터는 실시간으로 방 안의 3D 공간 지도를 만들고, 장애물의 정확한 좌표를 계산한 뒤 가장 효율적인 이동 경로를 설계해 행동했습니다.

문제는 이 방식이 현실에서 너무나 무겁고 느렸다는 점입니다. 방 안의 의자가 몇 센티미터만 옮겨져도, 조명이 조금만 바뀌어도 기존에 그려둔 세계 지도가 무용지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로봇은 새로운 지도를 그리느라 멈춰 섰고, 결국 작은 변수에도 쉽게 먹통이 되곤 했습니다.

이때 로드니 브룩스는 '포섭 구조(Subsumption Architecture)'라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합니다. 완벽한 지도를 그리는 중앙 집중식 뇌를 없애는 대신, 아주 단순한 동작 규칙들을 겹겹이 쌓아 올리는 방식이었습니다.

  • 1단계: 장애물을 피한다.

  • 2단계: 앞으로 이동한다.

  • 3단계: 특정 목적지를 탐색한다.

위 단계처럼 하위 단계(장애물 피하기)가 항상 최우선으로 작동하게 만들었습니다. 굳이 전체 지도를 그려서 경로를 계산하지 않아도, 벽에 부딪힐 것 같으면 즉시 방향을 틀어버리는 복합적인 행동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반부 지능'이자 '포섭 구조'의 핵심 개념입니다.

곤충에서 배운 신체화된 지능(Embodied AI)

브룩스 교수는 인간의 고차원적인 논리력보다, 바퀴벌레나 개미 같은 곤충들이 생존하는 방식에 주목했습니다. 곤충은 복잡한 3차원 지도를 그리거나 미분 방정식을 풀지 않습니다. 그저 수많은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복잡한 지형을 거침없이 헤쳐 나갑니다.

여기서 나온 중요한 개념이 바로 '신체화된 지능', 즉 임바디드 AI(Embodied AI)입니다. 지능이라는 것은 모니터 속 알고리즘 하나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몸(Body)'과 그것이 놓인 '환경(Environment)'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그가 개발한 6족 보행 로봇 '젠기스(Genghis)'는 중앙 통제 장치 없이 각 다리에 달린 단순한 센서와 제어기만으로 동작했습니다. 지형이 고르지 않아도 다리 스스로가 지면의 느낌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균형을 잡았습니다. 계산량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고, 반응 속도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습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청소기 로봇에 남겨진 유산

이 시절의 철학은 결코 연구실 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로드니 브룩스는 이 임바디드 AI 이론을 바탕으로 '아이로봇(iRobot)'이라는 회사를 설립했고, 우리가 잘 아는 로봇 청소기 '룸바(Roomba)'를 탄생시켰습니다.

초기 룸바 청소기를 사용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초기 룸바는 집안 전체 레이아웃을 다 파악한 뒤 체계적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벽에 부딪히면 일정한 각도로 튕겨 나가고, 먼지가 많은 곳을 감지하면 그 자리에서 회전하는 매우 단순한 행동 알고리즘을 복합적으로 실행했습니다.

놀랍게도 이런 단순한 상호작용의 반복만으로 집안 전체를 깨끗이 청소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복잡한 센서와 고성능 컴퓨터를 쓰지 않고도, 몸과 환경의 반응만을 이용해 실용적인 피지컬 AI를 상용화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지능의 본질을 다시 묻다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오늘날 우리가 최첨단 로봇을 논할 때 빠지기 쉬운 오만이 바로 '모든 것을 계산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초거대 AI 모델이 발전할수록 정밀한 데이터 계산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해지지만, 피지컬 AI의 현장에서는 여전히 '몸이 체득하는 감각과 물리 법칙'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로드니 브룩스의 임바디드 AI는 지능이 단지 복잡한 연산 능력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물리적인 몸을 통해 현실의 마찰, 무게, 충격을 직접 겪어내며 적응하는 과정이야말로 피지컬 AI가 완성되는 진짜 열쇠라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핵심 요약 3줄

  • 로드니 브룩스는 완벽한 내부 지도를 그리는 계산 방식 대신, 몸과 환경의 즉각적인 상호작용을 강조한 '임바디드 AI'를 제시했습니다.

  • 하위 행동 제어가 상위 제어를 보조하는 '포섭 구조'를 통해, 복잡한 계산 없이도 물리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로봇을 제작했습니다.

  • 이 철학은 초기 로봇 청소기 룸바의 실용적 설계로 이어지며 상용 피지컬 AI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3편에서는 초기 연구실과 청소기를 넘어, 정밀함과 속도로 산업 현장을 바꾼 유니메이트부터 현대의 자율 동작 기계에 이르기까지 산업용 로봇 패러다임의 전환을 다룹니다.

생각해 볼 질문 실생활에서 정밀하게 계산된 명령대로 움직이는 기계와, 환경에 따라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대처하는 기계 중 어느 쪽이 더 '지능적'이라고 느끼시나요? 자유롭게 생각을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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